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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은 붉은 군대의 8%에 해당하는 100만 명은 여군이었다. 연합군과는 다르게 그들 중 대다수는 후방에서 지원 업무뿐 아니라 보병이나 전투병으로 전선에 투입되었다. 전쟁 기간 중 10만 명이 넘는 여군이 훈장을 받았으며, 여군 저격수만 2,000여 명 정도였으며, 독일군 11,280명을 저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2차 대전 당시 소련군의 저격수들은 이미 전설적이 었고, 종전 후 2,000여명 중 500여 명이 살아 남았다고 전해진다. 남녀 통틀어서도 최고의 전설적인 스나이퍼에 항상 거론되는 류드밀라 파블리첸코(Lyudmila Pavlichenko)도 그 중 한 명 이었다. 키예프 주립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던 그녀는 1916년 7월 우크라이나 벨라야 체르호프에서 태어났다.

14살 때 가족과 함께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로로 이사하면서 키예프 조병창에 일하며 사격 클럽에서 사격 훈련을 받았다. 이때 받은 사격 훈련으로 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여성 스나이퍼로서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소련 제25보병 사단에 자원입대하게 된다.

소련군은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인텔리에 여자이기 때문에 전방의 투입보다 간호병직을 제의하였으나, 파블리첸코는 사격 훈련으로 받은 수료증을 보이며 소총부대로의 입대를 희망하였다. 그래서 파블리첸코는 저격병으로서의 훈련을 받고 54저격연대 저격병으로 배치되어 1941년 8월 벨리아예프카 방어전에서 처음으로 2명의 적을 사살하게 된다.

이어 독일이 흑해 연변의 오데사를 장악하고 흑해의 요충지 "세바스토폴"을 함락시키려 하자 소련은 급히 "파블리첸코"를 "세바스토폴"에 투입한다. "파블리첸코"는 세바스토폴 전투에서 두 달 동안 187명의 독일군을 사살하는 성과를 거둔다.

 

세바스토폴에서 맹활약하던 파블리첸코는 1942년 6월 독일군의 박격포에 의해 부상을 입을 때까지 10여 개월간  총 309명의 독일군을 저격, 사살하여 소련에서는 영웅이 독일군에게는 죽음의 숙녀(Lady death)가 된다. 파블리첸코가 부상을 당하자 소련은 영웅 파블리첸코의 부상 치료를 위해 잠수함까지 투입시켜 그녀를 구출한다.

그녀가 부상으로 후송 된 후 결국 세바스토폴은 독일에 함락이 되고 만다. 부상 치료 후 파블리첸코는 후방에서 수백 명의 저격수를 양성하는 교관으로 복무했다. 연합군의 전쟁 영웅인 파블리첸코는 소련인으로서는 최초로 루즈벨트의 초대를 받아 백악관을 방문하였고, 미국, 캐나다 등에서 초청을 받아 강연도 하였다.

 1943년 소련 영웅 금성훈장을 받고 소령으로 진급 하며, 소련 예편 전까지 저격 교관으로 소련군에 몸담았다. 1974년 10월 10일 5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으며, 16세기에 건립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서 깊은 곳인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수도원 묘지에 안장되었다.


전체 저격수 통합의 기록으로는 309명 저격으로 23위이지만, 여성중 1위이다. 그리고 그녀의 첫 저격 성과인 1941년 8월부터 부상으로 후송이 된 1942년 6월까지 10개월간 올린 성과라는 것이 놀랍다. 만약 파블리첸코가 부상으로 후송 되지 않았다면, 독일군 장성 여럿의 목숨이 없어졌을 거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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