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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Shot, One Kill의 창시자 카를로스 헤스콕

온기(따뜻한 기운) 2018.11.06 07:30

One Shot, One Kill의 창시자, 현대 저격 교범의 아버지, 카운터 스나이핑 마스터(역 저격)등 "카를로스 헤스콕"에 대한 찬사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미 해병대의 전설적인 저격수 "카를로스 헤스콕"은 베트남전에서 신화적인 활약을 펼친 미 해병대 소속 부사관이다. 


카를로스 헤스콕은 헌병으로 베트남전에 파병되었으나, 1965년 캠프페리에서 개최된 국제사격대회에서 우승한 경력으로 헌병대 저격병으로 차출되어 2주간의 저격병 훈련 후 저격병으로서 활약을 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최강의 저격수로 꼽히는 "카를로스 헤스콕"은 그 어렵다고 하는 카운터 스나이핑(역저격)에 뛰어나, 공식 저격 기록인 93명 중 절반에 가까운 수의 적 저격수를 사살하였다는 전설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다.

베트남전 중에 카를로스 헤스콕의 공식 사살 기록은 93명이지만, 공식 기록이라느 것이 전담 장교의 직접 사살 확인이 있어야 인정이 되는 것이라, 비공식적으로는 300명이 넘으리라는 것이라는 것이 통상적인 사살 기록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수많은 활약상 중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적의 저격수 12명을 역저격한 전투에서 적 저격수의 조준경에 정확히 명중 시킨 헤드샷을 쏘았는데, 실전에서 유일무이한 현재까지의 기록이다. 톰 베린저의 스나이퍼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나오는 헤드샷의 상황이 이런 "카를로스 헤스콕"의 성과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세계 최장거리 저격 기록도 35년이 흘러서 총기 기술의 발달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깨졌다. 카를로스 헤스콕의 최장거리 저격 기록은 M2 중기관총으로 세운 약 2,300m 이다. 가장 유명한 기록은 3박 4일에 걸쳐 포복만으로 1.5 Km를 이동하여 월맹군의 기지로 침투, 월맹군의 장군을 사살한 것이다.


포복 전진 중에 곳곳의 경비병들과 심지어 경비견들도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쳤을 정도였다. 관측병과 둘이서 아군 소대를 포위하고 있는 월맹 정규군의 장교와 통신병을 사살한 후 5일간에 걸쳐 서서히 월맹군의 목을 죄었다.

장교와 통신병이 사살되고 나니 남은 일반병들은 다음으로 저격당할까 쥐죽은 듯이 엎드려 있기만 하였다. 가끔 저격수가 없어졌을까 생각에 고개를 슬쩍 내민 병사 몇명은 사살당해서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나머지 병사들과의 대치 구도는 5일간 지속 되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꼼짝없이 5일간 생사를 헤매던 월맹군을 카를로스는 아군에게 폭격 요청을 하여 상황을 종료 시켰다.

베트콩 사이에서 "카를로스 헤스콕"은 "Lông Trắng", 하얀 깃털(white feather)이라고 불리우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카를로스 헤스콕은 부니 햇에 흰 깃털을 달고 다녔는데, 카를로스 헤스콕을 노리고 월맹군의 역저격이 다수 행해지니 미군의 다른 저격수들도 적을 유인하기 위해 모두 모자에 흰 깃털을 달고 다녔다.

월맹군에서는 도저히 안되니 "카를로스 헤스콕"의 사살에 현상금 3만달러라는 개인 최고 금액의 현상금을 걸기까지 했다. 전설의 스나이퍼나 저격사에서 "카를로스 헤스콕"의 위치는 저격수가 많은 정도를 벗어나 저격술 학교의 시스템을 정립한 교관으로서의 위치를 높게 평가한다. 여러 전설적인 업적으로 그린베레와 SEAL이 M14를 개량해서 만든 저격 소총인 M25에 "카를로스 헤스콕"의 별명인 "하얀깃털"을 헌정하기도 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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