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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라엘은 1948년 이스라엘은 무리하게 독립을 선언하였고 팔레스타인과 오랜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 주변국들은 온통 자신들의 적이었고, 유럽 각지에 흩어졌던 이스라엘은 오랜 핍박 속에 획득한 자본이 축적되어 있었지만, 전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군사력도 마땅한 무기도 없었다.


무기가 변변치 않은 이스라엘은 미국제 무기는 물론 자기들을 학살하던 나치의 무기까지 썼었다. 민병대와 독립을 갈망하는 군조직이 있었지만 2차대전 이후 버려진 장비와 총기로 전쟁을 수행하기는 어려웠다. 창군 당시 이스라엘은 소련을 배경으로 한 체코의 지원을 받았다. 소련은 중동에 공산 세력을 키우기 위해 초기에는 이스라엘을 지원했다.

얼마 가지 않아 체코가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하고 친 아랍주의 노선을 걷자 완제품 및 부품 조달에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에 이스라엘은 독자 개발에 나섰고, 현역 군인이던 개발자 우지엘 갈(Uziel Gal)이 제안한 모델이 경쟁에서 채택되었다. 1951년 개발된 우지 기관단총은 권총과 비슷하게 대용량 탄창을 손잡이 끼워 사용하는데, 유효 사거리가 200m여서 여타 기관단총처럼 근접전에서 충분히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개발이 되었다.

우지 기관단총의 장점은 총의 길이가 47cm에 불과하고 분당 600발의 뛰어난 연사력으로 미국, 우리나라 등 대통령 경호실에서도 사용된 기관단총이다. 저렴한 가격에 잔고장이 없고, 길이는 650mm이지만 개머리판을 접을 시에는 470mm가 된다. 휴대가 편리하여 누군가를 경호를 하다가 비상상황 발생 시 재빠르게 총을 꺼내어 사격이 가능하다.

우지 기관단총이 주목을 받은 사건은 레이건 대통령 암살사건에서 시크릿서비스가 우지를 꺼내 들자 주위에 있던 기자들이 사진을 찍어 우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이 사건에서 시크릿서비스가 꺼내 든 우지를 보고 전 세계 테러리스트들이 우지를 주문하는 사태가 발생이 된다.


우지 기관단총은 약 1,000만 정이 생산되었다. M16 돌격 소총의 생산량이 800만 정 정도이니 우지의 인기는 전 세계 곳곳에 퍼지게 되었고 아이러니하게 이스라엘이 개발한 기관단총을 아랍계 테러범들도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오픈볼트방식으로 명중률이 높고, 여러 종류의 탄약을 사용 가능하며 총알이 다 떨어졌을 시에는 옆의 아군이 우지가 쓸 수있는 탄약을 가지고 있다면 총열만 바꾸어서 바로 사용 가능하다.

우지의 발사 속도는 분당 600발이다. 즉, 1초에 10발이 나간다는 것이고, 최대 100발 탄창을 사용해서 많은 양의 탄약을 적에게 쏟아 부을 수 있다. 우지 기관단총의 단점은 크기가 작아 경호에 유리한 것은 맞지만, 그 크기가 애매하다. 81년도 레이건 대통령 암살 미수사건에서 경호원들이 옷에 숨기기 힘들어 서류가방에서 꺼내는 장면이 노출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우지는 기관단총이다. 정작 개발한 이스라엘의 주요 적국들이 사용하는 소련제 AK47과 대항하기에는 화력이 약하고 크기가 작아서 총열이 짧다보니 그만큼 사거리도 짧을 수밖에 없다. 우지를 개발하기 전 사용하던 FN FAL은 내구성이 너무 약해서 쓸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이스라엘의 선택이었다고 보여진다.

탄생한지 오래된 구형 기관단총이고, 아직도 90개국에서 사용할 만큼 인지도가 높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HK MP5 같은 우수한 성능의 기관단총이 나오면서 생산량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엄청난 생산량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앞으로도 오랜 기간 우지 기관단총이 사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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